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그것은 우리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더 극명하게 두드러지곤 하는 것 같습니다. 주위 친구들과 경쟁을 통해서 시험을 치르고 학교에 진학하는 일련의 이벤트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한계는 이런 것이라는 무의식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것이 사실은 우리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방식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바뀌어가는 것은 사실은 시험 성적 때문이 아니고, 주위사람, 선생님들의 태도나 교육방식에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성적에 따라 열등생과 우등생을 가르고, 각기 다른 태도로 학생을 몰아세웁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자신이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관점을 심어주게 될 수 있습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프라이드가 높고, 그보다 못하면 프라이드가 낮은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인생을 학습하면 자신이 있을 공간에 대한 제약이 생기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에도 한계가 생기게 됩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마음의 편안함입니다.
자신이 있어서 마음이 편안한 상태, 사람은 그런 곳에 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연봉이 낮은 곳에 다니면서 자신은 이것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높은 연봉을 받아도 절대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전자는 연봉을 올리려고 해도 갑자기 차이가 많이 나는 회사로 갈 확률은 지극히 낮을 것입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더 많은 선택지를 지니고 검토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의 자신의 한계를 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월 200에 안주하는 사람은, 월 1000을 벌 수 있는 길을 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재 자신이 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겁이 나고 마음이 불안함과 중압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제약을 두지 않고 더 많은 수익을 바라는 사람은 얼마든지 월 1000이상을 벌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찾아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풍요로움이 있는 생활 속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돈에 관한 예는 단순한 비유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요는 언제든 자신의 한계를 조금 더 높여두는 것이 인생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한계는 계속 높여도 되지만 절대로 아래로 내리려 해서는 안 됩니다. 높은 한계를 정하면 점점 더 진취적인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지만, 한계를 낮추면 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감정적,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면 편안할 것 같지만, 사람은 자신이 정한 틀에서 벗어나면 불안함과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 그릇의 차이는 정신적인 것이고 육체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그릇은 얼마든지 자신이 그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실제로 큰 것도, 아주 작은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자신이 다른 대상과 비교해서 커지게도 작아지게도 만드는 것인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받아온 대우와 강박관념에 자신의 그릇이 작다고 속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사람만이 지닌 위대함이 있습니다. 한껏 욕심을 부려서 물질적인 풍요로움에서 편안함을 찾으라는 말은 더욱이 아닙니다. 단지 외부의 평가와 관점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자신을 현재보다 더 높이 평가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지금껏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 고민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무시를 해도 될 것이지만, 만약 자신의 한계를 높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이라면, 쉽게 그것을 이루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타인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고 타인을 도와 성공을 이루게 해주는 경험을 해 보는 것입니다.
자신이 성장했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 어느 날 문득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