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는 평범한 일상의 공간. 누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평면은 아니라고 합니다. 즉 2차원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개의 경우는 3차원에 시간이 더해져 4차원이라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에게 물어보면 끈 이론을 설명하며 ‘적어도’ 10차원 이상이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10차원도 느낄 수 있다는 말일까요?
쉽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차원이 우리가 사는 차원의 한계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2차원에 사는 사람이라면 3차원의 공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인식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인식의 한계를 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칼 세이건의 차원 설명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그 훨씬 이전에도 플랫랜드라는 책에서 차원에 대한 모순을 다룬 천재가 있었습니다.
세 개의 공간적인 차원은 넓이와 길이 그리고 높이 또는 심도를 가진다고 명쾌하게 설명됩니다. 이런 공간적 차원에서는 자신의 물리적인 위치를 언제나 정확하게 표시할 수가 있습니다. 일 차원 공간은 길다란 실에 구슬을 꾀는 것 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이 실에 꾀어진 구슬은 앞 또는 뒤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고 그 위치를 나타내는데 필요한 변수는 ‘길이’ 단 한가지일 것입니다. 일 차원 공간에서는 길이 이외에는 특징이 없습니다.
이 차원 공간에서는 어떤 지점을 나타내기 위해 두 개의 좌표를 필요로 합니다. 이는 평평한 그물망에 구슬이 달려있는 듯 한 것으로 전후와 옆으로 이동이 가능해 집니다. 그리고 삼 차원 공간은 깊이라는 개념이 생겨남으로써 다층으로 겹쳐진 그물망에서 아래 위로도 움직일 수 있는 형태가 될 것입니다. 기하학에서는 1차원을 점, 이 차원을 선, 3 차원을 입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 입체면에서 시간이 더해진 것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듭니다. 지금까지 1, 2, 3차원을 설명할 때에는 공간적인 차원을 들었는데 과연 시간은 공간적인 차원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과학에서 우주에 있는 물체의 위치를 특정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인 공간에서는 아인슈타인은 시간을 공간의 고전적인 세 가지 차원에 추가시켰습니다. 적어도 수학적으로는 이 네 개의 차원은 일반적으로 시공의 영역을 도출하는데 의미를 둡니다. 그리고 그 수학적인 형식주의가 의외로 많은 중요한 증명요소의 표현과 맞아 떨어진집니다. 예를 들어 전자기학의 성질을 완전하게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은 4 차원 모델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공간적으로 3 차원 이상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앞에서 언급한 칼 세이건의 설명을 보았다면 이해할 것이지만 이 질문은 우리에게 도전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길이, 넓이, 높이 밖에는 인식하지 못하는 뇌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우리의 한계를 인식하고 다른 측면에서 이론을 검증하려 노력합니다. 우주를 구성하는 소립자에 관한 지식은 양자물리학의 표준모형으로 알려진 것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표준이론은 모든 것을 형성하는 기본적인 구성블록과 그 블록에 작용하는 힘 양방을 설명합니다. 기본 블록은 알려진 것이 12개가 있고, 6개의 쿼크와 6개의 렙톤이 있습니다. 4개의 힘이 있으며 이는 중력, 전자기력, 강한 힘, 약한 힘입니다. 각 기초적인 힘은 힘을 전달하는 기본입자로부터 생성됩니다. 예를 들면 광자는 빛의 입자이지만 전자기력을 매개로 합니다. 이런 입자와 힘의 움직임은 표준모델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중력 이외에는 말입니다.
오늘날의 이론물리학에서도 이 중력의 양자론을 발견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과제로 남겨져 있습니다. 끈 이론은 우주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두 가지 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을 통합해서 그 해법을 모색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론에서는 표준모델의 기본입자는 모두 끈이라 불리는 1차원의 물체로 치환되고 있습니다. 각 끈은 상대성이론에서 말하는 시공의 4 가지 차원에 대해서 하나의 전자기력과 다섯 가지의 핵력이 더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추측하고 있는 추가된 6가지 차원이 검출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도 작기 때문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시화하는 방법으로 칼라비 야유 다양체의 형태를 들 수 있는데 표현은 가능할지라도 우리가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6차원의 칼라비 야유 다양체에서는 몇 만 가지의 해석 가능한 모델이 있으며 아직까지 끈 이론에서도 이 다양체가 올바른 것인지 합리적으로 증명할 방법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10차원이론을 기술하는 끈 이론 방정식도 또한 여러 가지 형태가 존재합니다. 이 외에도 보손 끈이론이란 것도 있는데 이는 세계를 최대 26차원으로 상정합니다. 하지만 현재 끈 이론이 현실 자연계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어떤 증거도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멀티버스 같은 이론이 뜨고 있는 요즘 차원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우리가 차원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유는 자신이 그렇다고 믿는 공간에 대한 인식만을 확인하려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차원이란 개념도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이것이 꼭 공간적인 개념만을 지닌다는 정의는 없습니다. 3차원에 시간이 추가되는 시점에서 공간에 대한 개념과 인간이 만들어 낸 시간이라는 두 개의 개념이 짬뽕이 되어 새로운 4차원을 정의해 버렸습니다. 차원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힘과 입자뿐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 않은, 명칭이 붙지 않은 영향력들 말입니다. 우리는 차원을 생각함에 있어 좀 더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관점에서 다가가야만 합니다. 건축설계에서는 아무리 복잡한 구조물이라도 모두 2 차원의 도면이 바탕이 되지만 완성된 것은 입체적인 것들입니다. 우리의 두 개의 눈도 어쩌면 실제로는 2 차원의 세상을 보고 뇌에서 삼 차원의 형태로 렌더링을 해서 인식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상식과 고정관념이 우리의 인식을 흐리게 하기도 합니다. 과연 우리는 몇 차원에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창의적으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