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양자의 입자성과 파동성은 난해한 것이다

fiction-google 2024. 1. 7. 00:48
반응형

 

 모든 물질이며 빛조차도 입자와 파동의 두 가지 성질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입자는 단일의 작은 알갱이로 마치 BB탄을 발사하는 것 같은 이미지이며, 파동은 물결이 파도를 일으킬 때 보이는 출렁임과 같은 모양을 연상하면 될 것입니다. 광선은 일반적으로 파동의 성질이 강하다고 생각되어 왔는데, 실험에 의해서 입자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결과도 도출 되었습니다. 입자와 파동은 정 반대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모든 물질은 이 입자와 파동의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물, 사람, 동물, 식물, 흙, 불, 빛 등을 막론하고 모두 같습니다. 빛이 입자의 움직임을 보인다는 19세기의 발견으로 양자역학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힘은 질량 곱하기 가속도라는 고전물리학을 기반으로 우리는 일상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별 저항이 없으며 같은 무게와 모양의 공과 돌멩이를 던져보면 거의 같은 거리를 날아갈 것이란 것은 금새 상식적으로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입자상태의 물체에는 일정한 속도와 방향이 있고 질량 또한 지닙니다. 그 크기가 어떻든 질량에 속도를 곱하면 운동량을 계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몸무게를 지닌 사람이 한 사람은 천천히 걷고 다른 한 사람은 빠르게 걷는다면 당연히 빠르게 걷는 사람의 운동량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뚱뚱한 사람과 마른 사람이 있다고 쳐보면, 마른 사람이 빠르게 걷는다고 해도 뚱뚱한 사람이 천천히 걷는 것 보다 운동량이 작게 나올 수 있습니다. 움직이는 물체가 정지해 있는 물체에 충돌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움직이던 물체의 속도는 줄 것이며 정지해 있던 물체의 속도는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입자가 충돌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는 것이 운동량으로 결정됩니다.

 

이처럼 물리에서 입자는 특정한 예측 가능한 패턴을 보임으로 관찰이 용이하고 사람이 이성적으로 유추하고 계산하기 쉽습니다. 입자는 알갱이이고 덩어리 이므로 구분하거나 헤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파동은 정말로 입자와 비교하면 애매합니다. 바람이 불거나 연못에 파문이 이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요. 이런 것들은 헤아리기 힘들고 다음에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계산하기가 아주 까다롭습니다. 외부의 많은 요소들로 그 파동은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파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관찰 방법에도 신경 쓸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입자와 다르게 파동에는 일정한 위치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끊임없이 출렁이고 위치가 변화합니다. 바다에서 파도가 일면 한쪽 방향으로 밀려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방으로 모두 퍼지는 것이며 고저가 있는 파동은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파동이 계속해서 움직이며 퍼져나가는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파동성에서는 고정된 위치가 없습니다. 또한 이 파동의 특이성은 위치와 속도를 지닌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공간상으로 퍼져나가는 파장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파동은 주파수를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가능합니다. 고주파는 떨림이 빠르고 파동이 짧으며 저주파는 떨림이 느리고 파동이 깁니다. 그래서 이 파동과 파동 사이의 시간을 측정하는 것으로 성질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파동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파동끼리 서로 영향을 미쳐 더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는데 문제는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즉 ‘간섭’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간섭의 문제는 바람, 파도, 빛, 소리, 진동 등 우리 생활에서도 흔히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 이 파동과 간섭을 이해하는 것은 그것들 보다 조금 난해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고막은 공기의 파동을 읽고 우리의 뇌에서 그 신호를 처리합니다. 만약 공기가 없는 진공상태라면 우리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옆의 사람에게 목소리로 의사를 전달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음파는 공기중의 압력파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체는 자연스럽게 파동을 일으킬 수도 해석할 수도 있는 기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았을 때 생소해 보이는 입자와 파동이 사실은 우리가 매일을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일상적인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렇게 진화되어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빛은 좀 다른 종류의 파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동하는 전기장과 자장이 빈 공간을 관통합니다. 이 광파를 우리는 신호로 바꾸어 뇌에서 다시 상을 만들어 냅니다. 광파와 음파의 차이는 광파는 직진하는 성질을 지니지만 음파는 사방으로 확산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랜턴으로 벽을 비추면 앞에 있는 벽면에는 빛이 도달하지만 뒷면에서는 그 빛을 볼 수 없습니다. 반면 아파트 윗층에서 음악을 크게 틀면 아랫층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음파도 그 에너지의 크기와 속도, 파장의 길이에 따라 다시 도달할 수 있는 정도에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빛도 그 에너지의 크기에 따라 더 멀리 또는 적게 비추어집니다. 파장은 더 짧고 에너지가 클수록 직진성이 강해지고, 파장이 길수록 더 넓게 퍼집니다. 저음의 소리를 들을 때와 고음의 소리를 들을 때 그 떨림이나 전달 범위가 다름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빛은 소리에 비해 파동이 극도로 짧아서 직진성이 강해지고 이로 인해 소리와 같이 사방으로 퍼지지 않게 됩니다. 또한 사물을 뚫고 지나가거나 울리는 등의 작용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빛 또한 파장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면 빛은 왜 사방으로 퍼지지 못하고 반대 쪽에서 볼 수 없는 것일까요? 그것의 해답은 위에서 말한 파동의 간섭과 연관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확실하다고는 주장할 수 없지만, 모든 물질은 고유의 파동이 있고 그 파동이 광파보다 클 때에는 투과나 확산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빛의 간섭으로 일어나는 현상은 빛과 빛이 부딪혀 그림자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빛이 사물을 투과하지 못한다는 것은 일상적인 영역에서의 가시광선일 때이고, 그 주파수가 더 높은 영역의 빛에서는 통용되지 못합니다. 우주에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다양한 주파의 빛이 존재하며 때로는 빛의 색으로 물체의 온도를 알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빛에 대한 이중성과 생각들에서 빛의 파동과 입자에 관한 모순이 발생하고, 이런 연구 끝에 빛 속에 들어있는 진동의 개념이 불거지면서 이것이 ‘양자’의 진상으로 거론되기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양자라는 것 자체도 이 주파수의 떨림에 관한 에너지의 특정 단위를 나타내는 이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빛과 파동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 것은 막스 플랑크가 시초였지만 이것을 진지하게 이론화 시킨 인물이 우리가 잘 알고있는 아인슈타인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광전효과는 실제로 우리가 문명의 혜택을 누리게 해주는데 많은 일조를 해 주었습니다. 이 내용을 몰라도 우리는 리모콘을 눌러 TV를 켜거나 각종 센서들이 반응하게 할 수 있습니다. 왜 리모콘을 누르면 TV가 켜지고 꺼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빛을 조사해서 전자를 날리기 때문입니다. 이 전자가 회로에 전류를 흐르게 하고 각종 신호의 처리를 거쳐 특정 동작을 하도록 유도하는 기폭제가 되는 것입니다.

 

광선은 작은 입자의 연속체이고 각기 플랑크 정수에 빛의 주파수를 곱한 것과 같은 에너지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파장이 작은 광자는 큰 운동량을 지니며, 파장이 큰 광자는 아주 작은 운동량을 지닙니다. 이런 성질들을 엑스선이나 감마선과 같은 것들이 물질을 투과하며 반사되기도 하고 확산되기도 한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론상으로 물체의 파장을 조절할 수 있다면 벽을 통과할 수도, 또는 빛으로 벽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주는 그렇게 안일하게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이 입자와 파동에 대한 이론과 해석은 계속해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끼치고 간섭을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반응형